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Sceptical Essays)
Desultory Reading 2009/08/06 11:01저자는 버트란드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원제[Sceptical Essays]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합리적 회의주의자'로서 쓴 에세이집이다. 버트란드 러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생각이라기 보다는 경외감에 더 가까울 것이다-은 한마디로 '천잰데~~~'이다. 실재로 이 분은 천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고 그리 불리우고 있다. 도대체 100년쯤 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이 책의 핵심은 사실 저자의 서문에 다 나와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주절주절 뭔가를 길게 적는 것 보다는 서문에서 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독자들에게 어쩌면 역설적이고 파괴적으로 들릴지 모르는 어떤 원칙을 호의를 가지고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 어떤 원칙이란 바로 '옳다는 근거가 없는 명제는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제안하고 싶은 회의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문제의 경우, 비전문가는 그에 반하는 의견은 의심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문제의 경우, 그에 대한 어떤 의견도 비전문가는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가들이 받아들일 만큼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의견이라면, 비전문가는 그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주장들이 매우 온건한게 들릴지 모르나 만약 이런 원칙들이 실생활에 적용된다면 우리 삶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근거 없이 고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견들 모두 사실은 회의주의가 거부하는 위의 세 경우에 들어간다. 그러나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의견을 기꺼이 개진하되, 행동에 옮길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열띠게 주장하기 보다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며 차분히 합리적 근거를 설명한다.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주장 중에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는 의견은 없다. 사실 열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냉정한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사람들은 정치나 종교적 견해를 대부분 열정적으로 믿고 있다. 중국1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치나 종교 문제에 강한 자기주장이 없으면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한다. 사람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열띠게 주장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을 더 싫어한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는 대가로 정치나 종교 문제에 어떤 의견이든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치 조금이라도 이성적이면 사회생활이 어렵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이다. 나의 주장은 이런 일반적인 의견과 정반대인데,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이 책에서 설명해보려 한다.
내 서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러셀의 다음 책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다.
- 중국을 대하는 러셀의 태도는 서양 문명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태도와 대도적으로 무척 관대하다. 이는 그가 중국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동양 신비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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