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ultory Reading'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5.08.11 The Martian (마션) by Andy Wier
  2. 2011.12.11 Kindle Touch (by Amazon.com)
  3. 2011.11.09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4. 2011.11.09 흑산(黑山)
  5. 2010.06.14 영훈 meets 지연 - 광화문연가 그리고 가야금연가
  6. 2009.09.03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
  7. 2009.08.06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Sceptical Essays)
  8. 2009.07.24 The First 90 Days
  9. 2009.07.20 블로그 교과서
  10. 2009.07.16 철학의 모험

The Martian (마션) by Andy Wier

Desultory Reading 2015. 8. 11. 08:51

 

오랜만에 읽은 SF. 11춸 쯤 개봉한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트레일러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흥미가 생겨 개봉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볼 마음에 Amazon과 Audible 양쪽에서 주문하였다.

 

킨들보이지와 스마트폰의 킨들앱 그리고 스마트폰의 오더블앱 모두 세 가지 방법으로 읽(+들)었는데 아무래도 출퇴근 시간동안 차의 블루투스 오디오를 통한 오디오북으로 가장 많은 진도를 뺀 것 같다. 아무튼 전부터 감탄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감탄한 건 어느 매체로 읽든 세 가지 매체에서 모두 자연스럽게 싱크가 되어서 가장 최근 읽거나 듣던 위치를 다른 디바이스에서 바로 연결해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편리한데 경험할 때 마다 감탄이 나온다. 이 점이 The Martian도 번역판이 지난 7월말에 출판되었지만 굳이 kindle로 원본을 구매한 이유이기도 하다. 출퇴근 모두 합해 근 한 시간의 운전을 하는데 이 시간 동안 Audible 읽기 속도를 1.25배속 정도로 맞추면 의외로 상당한 분량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의 뼈대는 어찌보면 상당히 익숙하고 진부할 수도 있다. 프라이데이나 윌슨이 없는 '화성판 로빈슨크루소 또는 캐스트어웨이 더하기 맥가이버'라고 요약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킨들에디션 페이지 기준으로 360 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 있게 넘어가는 이유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인칭 시점의 항해(비행)일지 형식의 기록과 현실적인 과학적 고증이다. 초반에 마크 와트니가 기본적인 생존시스템을 세팅하는 단계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계산들은 정말 펜과 종이을 들고 같이 계산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만큼 흡입력이 있다. 단순한 숫자들과  나누기와 곱하기의 연속이 그렇게 강한 흡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그 다음 요소는 바로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의 성격 설정이다. 소설에서 그는 '식물학자/엔지니어 (botanist/engineer)'인데 이 중 엔지니어가 주는 묘한 캐릭터이다. 과학자가 주는 성격적 느낌과 엔지니어의 성격에는 미묘하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로 이 차이가 나사의 과학자들로 대표회는 성격과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묘사는 'F-word를 많이 쓰는 맥가이버' 정도.

 

책을 다 읽은 다음 소감은?

 

우선 번역판을 주문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주려고. 이 녀셕이 부디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장를에서 항상 낯설어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수학과 과학의 요소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요소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11월 개봉한다는 영화는 무조건 예매 1순위로. 큰 딸과 같이 읽고 영화로 보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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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le Touch (by Amazon.com)

Desultory Reading 2011. 12. 11. 22:50

우연히 굴러들어 온 아마존의 새로운 킨들 - Kindle Touch
Special Offer라고 해서 화면보호기와 도서목록에서 광고를 띄우고 대신 가격은 일반판보다 40불이 싼 99불짜리 킨들.

역시나 제일 좋은 점은 e-ink라는 점. 덕분에 흑백이라는 게 약점이지만 왠만한 페이퍼백 영어책들이 흑백이란 걸 생각해보면 별반 큰 약점이 되진 않는다.

이번 버전이 터치라 특히 좋은 건 책을 읽다 사전을 찾아야하는 경우 이전 킨들들 처럼 하드웨어키로 번거롭게 커서을 움직일 필요없이 그냥 화면에서 해당 단어만 누르면 끝이라는 점. 그러니 안드로이드 킨들 앱에서의 인터페이스와 같아졌다고 보면 된다.

다음 장점은 역시 무게와 배터리 지속시간. 다른 패드류에 비해 현저히 가볍고 한 번 충전으로 한 달 가량은 사용할 수 있을테니 충전의 번잡함에서 많이 자유로운 그야말로 책을 읽는 도구로써는 최고랄 수 밖에 없다.




Special Offer 버전이라 아래처럼 광고화면이 화면보호기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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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Desultory Reading 2011. 11. 9. 23:59


회사 강연에 강사로 초청된 광고인 박웅현씨 강의를 듣고 오랜만에 코드가 맞는 강의를 들었다는 느낌에 다음날 퇴근길 교보에 들러 고민없이 집어든 책.

워낙에 그의 강연에서 들었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책을 읽으며 느낀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다만 몇가지 인상적인 인용구들과 박웅현의 말이 머릿속에 남게된 느김.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박웅현이 Oliviero Toscani의 인터뷰 중 인용한 한 문장.
We are not civilized enough to be communist.

관심이 가는 말이어서 좀 더 찾아보니 Lurzer's Int'l Archive의 'Provocation is a form of generosity.'라는 제하의 인터뷰 중 Oliviero Toscani의 답변 중 일부였다. 그 인터뷰 기사에서 해당 답변전체와 질문을 옮긴다.
Q by L.A.: Do you sympathise with socialist economic ideas? Are you a communist at heart?

A by Oliviero Toscani: We are not civilized enough to be communist. To be communist, you need a very civilized, very developed society, and we are not at that stage yet. Perhaps in three hundred years. But the communist vision is too advanced a vision for present level of humanity.

자본주의의 최첨병, 광고쟁이 그것도 그 유명한 베네통 광고의 Oliviero Toscani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말.

책도 박웅현의 강의도 뭔가 '아! 바로 이거야!'하는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강연 중 소개한 그의 광고 중 하나에서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던 Eals의 'Love of the loveless'가 들어있는 Meet the eals 앨범을 자꾸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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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黑山)

Desultory Reading 2011. 11. 9. 23:27


흑산에 유배된 정약전의 얘기로 시작해 그의 조카사위 황사영의 순교로 마무리되는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와 그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소설.

단박에 빠져들어 읽었던 '칼의 노래', '남한산성'과 달리 뭔가 이상하게도 몰입하기 힘든 작품.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김훈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작년쯤에 읽었던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의 소설판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것이 소설의 탓인지 아니면 이 소설의 한 줄기가 되는 황사영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종교에 지극히도 회의적인 나의 태도 탓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다만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였으나 나는 여태 이해하지 못했던 말, '김훈 작가의 글은 마초적이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아니 적어도 '흑산'은 내게 마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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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 meets 지연 - 광화문연가 그리고 가야금연가

Desultory Reading 2010. 6. 14. 19:55
원래 Desultory Reading 카테고리는 내가 읽은 책에 관한 분류로 만든 것인데 음반 얘기를 하려고 보니 적당한 카테고리가 없어 그냥 이 카테고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음악을 듣는 것도 귀로 읽었다고 하면 될 것 아닌가? 교보문고 간 김에 항상 핫트랙스에 들르게 되는 이치 아닌가?



다른 음반을 사려고 뒤지다가 우연히 손에 잡혀 산 앨범이다. 의외의 수확이었던 앨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류지연씨가 故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을 가야금으로 연주한 앨범이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에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낸 내게 이영훈이란 작곡가는 자연스레 가수 이문세와 겹쳐지는 이미지이다. 이문세씨의 노래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당연히 이영훈 작곡가는 다른 설명이 필요없이 이문세라는 가수로 설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영훈 작곡가의 대표적인 곡은 다른 말로 가수 이문세의 대표곡인 것이고 내가 굳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알고 있는 곡들, 너무나 귀에 익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서정적인 곡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익숙한 멜로디들 또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너무나 익숙한 곡들이기에 가만히 가야금 선율만을 듣고 있어도 머릿속에 자연스레 가사가 떠오른다. 가끔은 내가 이 곡들을 몰랐더라면 최소한 가사들을 몰랏더라면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선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록된 곡들은 아래와 같다.
01. [가야금 3중주] 광화문연가
02. 소녀
03. 가로수 그늘에 서면
04. 난 아직 모르잖아요
05. 붉은 노을
06. 시를 위한 시
07. 가을이 오면
08. 사랑이 지나가면
09. 그녀의 웃음소리뿐
10. 옛사랑
11. [가야금 & 현악사중주] 난 아직 모르잖아요
12. 가을이 오면
13. 광화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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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

Desultory Reading 2009. 9. 3. 00:06


저자는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아니다 작위가 있는 분이니 Sir. Bertrand Russell, 버트란드 러셀 경(卿)이라 불러드려야 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모두에게 껄끄러운 주제, '종교'. 그럼에도 우리 사회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종교.  그 중에서도 유일신 신앙의 대표이자 서구의 문화, 사상,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 거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러셀은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 아닌지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해간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 리차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500페이지 가량의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러셀의 이 연설과 에세이 모음은 300페이지가 채 못되는 분량에서 해야할 얘기를 다 들려준다. 뭐 글의 다소와 책의 페이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러셀의 글이 훨씬더 효과적이고 간략하게 왜 신(기독교의 그것)을 믿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 러셀은 꽤 많은 기독교 교리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왜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지 (아니 될 수 없는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를 잘 설명한다. 적어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신을 믿지 않은 나로서는 나 보다 훨씬 논리적인 설명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해주니 그지 없이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을 때는 사실 이런 깔끔하고 정갈함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아마도 이건 러셀이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다는 점과 정갈한 문체로 이름난 문필가였기에 만들어진 차이일 것이다.

아무튼 이 뛰어난 철학자나 나나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불가지론자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을 주는 '제1원인론'.

이 제1원인론에 대한 대답을 얻는 순간 아니면 대답은 얻지 못하여도 내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은 한 나도 '기독교인이 아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에 이 책에서 제1원인론에 관한 몇 구절을 인용한다.

나의 경우, 젊을 때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고, 오랫동안 제1원인론을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나이 열여덟이었을 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 라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 구절이 내게 제1원인론의 오류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나님처럼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 이론에는 아무런 타당성도 없다.
아무튼 적어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보다는 나은 어떤 설명이 있지 않은 한 내가 기독교인이 되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낀 것은 러셀이 그리스도의 성격과 도덕성이 결코 소크라테스 등의 다른 성인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점이나 새로운 점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드는 몇 가지 예들, 가령 '악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주어라.'나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내린 일화 등이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김규항의 [예수전]에서는 러셀이 얘기한 저 두가지 일화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한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동일한 텍스트르 얼마나 달리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물론 김규항도 주류 기독교인들과는 그 시각이 사뭇다르다는 점은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참, 그리고 사족인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기독교는 '개신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만 카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 통칭하는 넓은 범위의 기독교라고 봐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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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Sceptical Essays)

Desultory Reading 2009. 8. 6. 11:01



저자는 버트란드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원제[Sceptical Essays]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합리적 회의주의자'로서 쓴 에세이집이다. 버트란드 러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생각이라기 보다는 경외감에 더 가까울 것이다-은 한마디로 '천잰데~~~'이다. 실재로 이 분은 천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고 그리 불리우고 있다. 도대체 100년쯤 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이 책의 핵심은 사실 저자의 서문에 다 나와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주절주절 뭔가를 길게 적는 것 보다는 서문에서 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독자들에게 어쩌면 역설적이고 파괴적으로 들릴지 모르는 어떤 원칙을 호의를 가지고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 어떤 원칙이란 바로 '옳다는 근거가 없는 명제는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제안하고 싶은 회의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문제의 경우, 비전문가는 그에 반하는 의견은 의심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문제의 경우, 그에 대한 어떤 의견도 비전문가는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가들이 받아들일 만큼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의견이라면, 비전문가는 그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주장들이 매우 온건한게 들릴지 모르나 만약 이런 원칙들이 실생활에 적용된다면 우리 삶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근거 없이 고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견들 모두 사실은 회의주의가 거부하는 위의 세 경우에 들어간다. 그러나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의견을 기꺼이 개진하되, 행동에 옮길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열띠게 주장하기 보다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며 차분히 합리적 근거를 설명한다.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주장 중에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는 의견은 없다. 사실 열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냉정한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사람들은 정치나 종교적 견해를 대부분 열정적으로 믿고 있다. 중국[각주:1]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치나 종교 문제에 강한 자기주장이 없으면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한다. 사람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열띠게 주장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을 더 싫어한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는 대가로 정치나 종교 문제에 어떤 의견이든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치 조금이라도 이성적이면 사회생활이 어렵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이다. 나의 주장은 이런 일반적인 의견과 정반대인데,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이 책에서 설명해보려 한다.

내 서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러셀의 다음 책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다.

  1. 중국을 대하는 러셀의 태도는 서양 문명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태도와 대도적으로 무척 관대하다. 이는 그가 중국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동양 신비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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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90 Days

Desultory Reading 2009. 7. 24. 17:18

[블로그교과서] 얘기에서도 썼던 개인적인 행동양식 때문에 사게 된 책이다. 갑자기 Analyst 자리에 있다가 Manager 자리로 옮기게 되어서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부랴부랴 서점으로 달려가 새로운 리더, 매니저의 역할과 준비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10권 정도 샀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얻었던 책이 바로 Michael Watkins의 [The First 90 Days]이다.

이 책은 나의 당시 상황에 꼭 들어맞는 조언서이자 메뉴얼이었다. 새로 리더가 된 사람이 첫 90일 동안 무엇에 집중해야하고 무엇을 바꿔나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략 열가지 정도의 지침으로써 답해준다.

그 중 제일 기억나는 것은 바로 저자가 첫번째로 지적하는 것 바로 'Promote Yourself'라는 지침이다. 새로 리더/매니저로서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가 자신을 그 자리에 오르게 해준 과거의 영화(자신을 돋보이고 잘 평가받게 만든 Skillset)에 여전히 기대려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특히 초짜 Analyst에서 갑자기 여러 단계를 건너뛰고 manager 역할을 맡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 여전히 자신있던 분석적 능력과 기술에 기대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 업무를 위임하기 보다는 내가 직접 처리하려고 했던 경향도 강했던 것은 물론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인데, 새로운 역할에서 수행해야하는 능력과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이 편하게 느끼고 잘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려는 유혹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인지)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리더를 실패로 이끄는 제1요인 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한가지를 일깨워 준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제 몫을 다했다고 본다.

조만간 다시 이 책을 펼쳐 보아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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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독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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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교과서

Desultory Reading 2009. 7. 20. 09:34

저자는 IT문화원(www.dal.kr) 원장인 김중태.

어떤 사람이든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그것에 대해 정보를 얻고 착수하는 지에 대한 습관이나 일정한 패턴 같은 것이 있을 거다.

나의 경우 뭔가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거나 생소한 분야에 관한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그와 관련된 책부터 사서 읽는다. 인터넷 서점이든 오프라인 서점이든 일단 관련된 분야의 가장 쉬운 입문서나 안내서 종류를 찾아 사들인 다음 그 책들을 읽음으로써 대략의 개념을 잡거나 앞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대한 결정을 내린다.

인터넷 미디어인 블로그를 시작하기 위해 여전히 종이 위에 활자가 인쇄된 책을 산다는 것이 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고 책을 사는 대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아니면 관련 블로그롤 조금만 돌아 다니면서 비슷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어쩌면 인터넷이란 공간에 책 한 권에는 담을 수 없는 더 자세하고 방대한 정보가 있을 테고 그 정보의 질 또한 훨씬 우수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상의 이런 정보들은 체계적으로 구조화 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 내가 관련 주제나 분야에 대해 이미 어느 수준에 오른 상태라면 이런 정보들을 스스로 쉽게 체계화, 구조화 해서 받아들이겠지만, 내가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거나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정보만 가지고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내게 기본적인 틀을 잡아주고 개념을 정립해 줄 이미 체계화되어 정리된 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책은 여전히 효과적인 매체이고 또한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 되어준다.

이런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내 서재에 꽂히게 된 책 증의 하나가 바로 이 <세상과 소통하는 지름길, 블로그 교과서>이다.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온라인 서점에서 관련 책들을 검색하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인 듯 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책이 도착하자 마자 주말에 손에 쥐고 읽기 시작하여 단숨에 읽어 내렸는데 상당히 알기 쉽게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블로그가 진화해온 역사도 소개 되어 있어 어떤 맥락 속에서 현재의 블로그라는 형태까지 발전해오게 되었고 현재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마케팅에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구체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블로그 서비스를 선택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거개의 정보들을 망라하고 있는데다 블로그의 방문자를 늘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고 알려주고 있기게 나처럼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블로그를 하라'는 당부는 상당히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블로그를 운영해야지 블로그를 잘 운영하고 많은 방문자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블로그에 종속되어 버리는 우습지만 비극적인 상황에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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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험

Desultory Reading 2009. 7. 16. 00:37

저자는 이진경. 대충 80년대나 90년대 초에 대학교를 다녔다면 저자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을 정확히 왜 사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온라인 서점 어딘선가 리뷰를 보고 저자의 이름에 끌려 주문했을 것이다. 이진경이란 이름을 보고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과 <철학과 굴뚝 청소부>을 바로 떠올렸을 테니까.

아무튼 이 책은 일단 말 그대로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도록 함으로써 철학과 그 사조를 쉽게 풀어간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장자, 스피노자, 헤겔, 마르크스, 베이컨, 니체 등등 정말 교과서에서 한 번씩은 들어봤던 거장들이 저승에서 모여 서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바로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철학의 거장들을 저승이라는 곳에 모아놓고 동서양의 우화, 전설 등의 예를 들어가며 일상적인 얘기를 하듯이 그들의 철학을 논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철학개론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김을 받게 한다. 그리고 정말 쉽게 읽힌다. 사실 이 책을 화장실에 놔두고 볼일 볼 때만 읽었는데도 이 책이 화장실을 탈출하는데 걸린 기간은 채 일주일이 안될 것이다. 내가 변비란 걸 모르고 사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좀더 일찍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이 책이 내가 대학교 신입생일 때 출간되었다면 1학년 교양선택으로 들었던 '철학개론' 수업에서 절대 C학점을 받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정말 내 전재산과 오른쪽 손목을 걸고 맹세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다 실재로는 못 건다. 소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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