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
Desultory Reading 2009. 9. 3. 00:06저자는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아니다 작위가 있는 분이니 Sir. Bertrand Russell, 버트란드 러셀 경(卿)이라 불러드려야 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모두에게 껄끄러운 주제, '종교'. 그럼에도 우리 사회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종교. 그 중에서도 유일신 신앙의 대표이자 서구의 문화, 사상,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 거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러셀은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 아닌지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해간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 리차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500페이지 가량의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러셀의 이 연설과 에세이 모음은 300페이지가 채 못되는 분량에서 해야할 얘기를 다 들려준다. 뭐 글의 다소와 책의 페이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러셀의 글이 훨씬더 효과적이고 간략하게 왜 신(기독교의 그것)을 믿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 러셀은 꽤 많은 기독교 교리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왜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지 (아니 될 수 없는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를 잘 설명한다. 적어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신을 믿지 않은 나로서는 나 보다 훨씬 논리적인 설명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해주니 그지 없이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을 때는 사실 이런 깔끔하고 정갈함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아마도 이건 러셀이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다는 점과 정갈한 문체로 이름난 문필가였기에 만들어진 차이일 것이다.
아무튼 이 뛰어난 철학자나 나나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불가지론자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을 주는 '제1원인론'.
이 제1원인론에 대한 대답을 얻는 순간 아니면 대답은 얻지 못하여도 내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은 한 나도 '기독교인이 아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에 이 책에서 제1원인론에 관한 몇 구절을 인용한다.
나의 경우, 젊을 때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고, 오랫동안 제1원인론을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나이 열여덟이었을 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아무튼 적어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보다는 나은 어떤 설명이 있지 않은 한 내가 기독교인이 되는 힘들 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 라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 구절이 내게 제1원인론의 오류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나님처럼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 이론에는 아무런 타당성도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낀 것은 러셀이 그리스도의 성격과 도덕성이 결코 소크라테스 등의 다른 성인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점이나 새로운 점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드는 몇 가지 예들, 가령 '악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주어라.'나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내린 일화 등이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김규항의 [예수전]에서는 러셀이 얘기한 저 두가지 일화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한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동일한 텍스트르 얼마나 달리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물론 김규항도 주류 기독교인들과는 그 시각이 사뭇다르다는 점은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참, 그리고 사족인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기독교는 '개신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만 카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 통칭하는 넓은 범위의 기독교라고 봐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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