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영어교재를 고쳐주다. (Firefighter vs. Fireman)
Stray Thoughts 2009. 7. 31. 11:02영어는 영어유치원이 아닌데도 유치원에서도 정기적으로 영어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은 원어민 강사와 대화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큰 녀석이 자연스레 영어로 된 책들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읽고 싶어하는 것 같아 작년부터 1주일 한 번 방문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해주었다. 가만 보니 거의 자습이라고 해야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재와 테잎을 본인이 1주일 동안 듣고 보면서 익히면 선생님은 그냥 1주일에 한 번 집에 들러 한 시간 내외로 공부한 정도를 확인해주고 점검하는 정도인 것 같다.
한 달 전쯤에 아내가 큰 녀석 영어프로그램 진도가 많이 나가서 교재가 좀 어려워졌으니 날 더러 가끔 좀 읽어 주라고 한다. 여전히 재미는 있어 하는데 단계가 올라가면서 비디오 테잎도 없어지고 문장도 길어지고 하니 조금씩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넌지시 압력을 준다.
내가 봤을 땐 딸애가 버거워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요즘 하도 내가 두서 없이 사니 정신 좀 차리고 애들한테도 좀 더 관심을 보이라고 압력을 넣은 것 같다. 사실 저녁에 회의가 없는 날은 딸애가 자기전에 집에 들어가 책이나 영어교재 한 권씩은 꼭 읽어주고 재웠는데 요즘 이걸 빼먹은 날이 꽤 많았다.
아무튼 새 단계의 교재가 도착했기에 딸애를 재우기 전에 새 교재를 읽어 주는데 여러 직업들이 나오는 부분에 경찰관을 Police Officer라고 표현해 놓았다. 문득 나 어릴적엔 어김없이 Policeman으로 적혀있고 그리 배웠는데 십수년 전부터 조금씩 Police Officer라고 성(性)중립적인 표현들로 바꿔가자는 얘기가 나오더니 이제는 어느정도 정착이 되어 그런 변화된 표현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단계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Police Officer만 있었다면 저런 생각 자체도 하지않고 그냥 읽어주고 넘어 갔을텐데 그 다음에 연이어 나오는 Fireman이 눈에 들어오고 저 두 단어들이 비교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다 온 건 아니구나 갈 길이 좀 더 남았고 여전히 내 딸들은 조금은 힘들게 길 주변으로 난 풀숲을 헤치고 걸어야겠구나 싶었다. 그나마 그 길이 내 어머니나 아내가 걸었던 길 만큼은 힘든 길이 아닐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잛은 순간 이런 감상이 지나쳐가고 책을 다 읽어 준 후에 딸애에게 연필을 가져오라고 해서 Fireman이란 단어에 두 줄을 긋고 아래에 Firefighter라고 고쳐 써주었다.
아마 1주일마다 오시는 선생님은 나중에 그걸 보고 참 성격 까칠하고 오지랖 넓은 부모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보통 언어는 시대와 의식이 반영된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언어 또한 의식과 시대에 영향을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주의하려고 한다.
Abrahadabra(Abracadabra)! I will create as I speak! - 말한대로 이루어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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